독감.

Thought

독감에 걸렸다. '수능 때 독감 걸리면 큰일인데!' 라는 마음으로 열아홉살 (자의적으로는) 처음 독감 백신을 맞은 이후로 거의 매년 겨울 독감 백신을 맞아왔었는데, 올해는 유난히 바쁜 관계로 백신을 맞지 않은 즉슨 바로 독감에 걸려버리고 만것이다. 세상 일 참 타이밍 기막히는구나 싶다가도, 내 면역력도 수준 참 알만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뭔가 씁쓸했다. 월요일 저녁즈음 부터 열이 끓기 시작해서, 밤에는 거의 사경을 헤맬 지경이었는데 다음날 병원에 가보니 독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인플루엔자 검사는 보험처리가 안되고, 타미플루 약 역시 보험처리가 되지 않아 비싼 관계로 보통 젊은 사람들은 독감이든 아니든 대증요법으로 잘 버텨내기만 한다면 나흘에서 닷새면 저절로 낫는다고 말씀을 해주셨는데(사당동에 있는 L이비인후과. 미약하나마 수익으로 연계될 수 있는 검사를 안하고 넘어가신다하여 급 믿음이 생겼다.) 나는 얼른 낫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솔직히 너무 아프고 괴로워서 검사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코 뒷쪽으로 깊숙이 검사용 막대기를 집어넣고 10분 정도 기다리니 아니나 다를까 A형 독감에 '당첨'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에 그 유명한 타미플루도 같이 처방을 받아왔다. 첫 날은 너무나 고맙게도 H가 간병을 와주었다. 독감은 전염된다고 절대 오지말라고 한사코 말렸거늘, H는 '자기는 너처럼 허약하지 않다. 의외로 본인은 튼튼하다'를 연발하며 죽과 과일과 레몬생강차와 마스크와 체온계 등등을 바리바리 사 들고 찾아왔다. 하루 종일 나의 말동무를 해주며 병간호를 해준, 심지어 본인도 면접 준비로 심신이 바빴을 터인데 밀린 설거지까지 해주고 간 H. 정말 너무 고마웠고, 나에게 이런 행운이 또 있으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튼 그렇게 오늘까지 이틀 정도를 약 먹고, 약 기운에 자고, 약 먹고, 약 기운에 자고를 반복한 결과 열도 많이 내리고 이렇게 일기를 쓸 수 있을 만큼 기력을 많이 회복하기도 했다. 다만, 이틀간 자리를 비운 결과 정말 엄청나게 많은 공/사적인 일들이 쌓이게 되었다. 일단 제일 큰 일은 당장 토요일에 있을 강의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인데, 과연 강의 준비를 끝내고 토요일에 정상적으로 강의까지 할 수 있을지가 제일 의문이다. 그리고 현재 팀원들이 해외로 모두 나가있는 지금, 내가 베이스캠프인 사무실을 잘 지켜야하는데 인턴인 K를 혼자 사무실에 둔 것이 계속 찜찜하게 마음에 남았다. 에고. 그래도 재미있는 사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사회에서 어느정도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약하게나마 알게되었다는 점이다. 허허. 그리고 이번에 아프면서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있었더니, 그 열나고 아픈 머리임에도 불구하고 간만에 여러가지 생각을 천천히 그리고 곰곰히 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너무 바쁘게 지나온 나날들을 돌아 볼 수 있는 예상치 못한 휴가를 얻은 셈이 되었다.) 휴. 얼른 나아서 원래의 궤도에 진입하고 싶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픈건 싫다. 아, 그리고 타미플루 약을 만든 사람 혹은 회사에게는 얼른 노벨상을 주어야하겠다! 올해 시작에 액땜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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