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두려움.

Development / Thought

-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기호에 따라 변해가는 것, 즉 나의 세계에 들어와 길들여지는 것은 꽤나 행복한 이야기인것 같지만, 실은 매우 두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상대방이 나에게 맞추어짐에 따라 나는 심신이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심에 따라 불편한 마음이 계속 자라나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맞춰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있을까, 누군가를 변하게 한 것에 대한 무한한 책임(내가 감히 그럴 권리가 있는가?), 상호 희생의 비대칭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의 발생 같은 생각들. 그냥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간주하기에는 너무 잔인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은 해도 사실 상대방이 나에게 맹목적으로 맞춰주는건 정말 행복한 일임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건 행복한 두려움이고, 나는 (매우 비겁하지만) 이에 대해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 이성과 감성을 존중 할 뿐이다. 거꾸로, 내가 길들임을 당하는 입장이라면 나는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의 기호에 순응할테니까.. 라고 쓰고 보니 내가 변하면 상대는 변할 필요가 없으니 약간 모순적인 것 같기도 하고. 으악!

- 과거에 비추어 보았을 때, 사실 위의 명제는 길게 이야기 할 필요 없이 ‘좋은게 좋은거’가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괜히 ‘나에게 맞춰주지 마라, 나에게 길들여지지 마라’ 라고 해봤자 서로 상처만 입을 뿐이니.(얘는 나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혹은 얘는 나에게 아직도 벽이 있구나 같은. 그리고 상대에게 그러한 생각이 들게 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 미안함.) 결국 서로가 현재의 사랑에 모든 것을 다 바쳐 충실하는게(많은 것을 잃을지라도, 각자가 그 상대방 없이는 못 사는, 상대방에게 매우 의존적인 인간이 될지라도.) 언제나 해답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의 일은 그 때 가서 생각하는거고.

-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보고 싶은데 공과 사의 사이에 존재한 인간관계라는게 좀처럼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 내가 걱정하는건 나도 ‘어른의 사정’이라는 변명하에 우리가 흔히 욕해오던 악인(이라고 쓰고 쌍놈이라고 읽는 그것.)이 되어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것도 포장하기 나름이겠지.

- 상기의 이유들로 약간의 행복한 두려움 속에 갖혀 있는데, 차치하고 얼른 life balance를 되찾고싶다. 일, 돈, 성취, 명예, 사랑, 친구, 가족, 건강, 여유, 휴식.. 그리고 제한된 시간과 체력, 정신력의 자원. (금전적 자원에 대한 이슈가 없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상황이긴 하다.)

- 오른쪽 눈에 다래끼가 난 것 같은데.. 내일은 안과를 가봐야지. 라식 하고 처음 가보는듯 하다.

- 최근 Meteor를 좀 눈여겨 보고 있는데 이거 아주 물건이다. php나 ASP(.NET)만 알고 있다가 Python Django나 RoR을 처음 보았을 때 ‘우와!’라고 외쳤다면, Meteor를 처음 본 순간은 ‘우와!’라고 외치는 것 조차 잊어버릴 정도였으니까. 뭐 Node.js 기반이라고 하니 어떤 이들에겐 크게 놀랍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 여태 배운 기술들을 활용해서 습작을 만들어보고 싶다. Meteor(CoffeeScript, Jade, Less, MongoDB..) 그리고 Mahout(Hadoop)을 이용한 추천 알고리즘, Redis와 Memcached, Jenkins, Ansible, ELK(Elasticsearch, Logstash, Kibana) 등등..

- joom.js에 아주 짤막한 contribute을 한 이후로 자신감이 붙어 왠지 오픈소스 프로젝트들에 끌리지만, 안될꺼야 아마.. 허허.

- 개발 관련 아티클들을 좀 제대로 작성해보고 싶은데, 변명일지는 몰라도 Tumblr는 너무 불편한 것 같다. 코드 하이라이팅 기능도 외부 모듈을 심긴 했는데 영 좋지 않고. 이럴땐 (남몰래) 존경하는 옆자리 J형의 ‘그냥 하자'라는 모토가 매우 와닿는다.

- 여전히 지하철에선 현진건 단편선집을 읽고있다. 10년 후에도 현진건 단편선집을 읽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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