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Thought

휴, 이렇게 추억 속의 장소에서 추억 속의 사람들과 밤새 술을 진탕 먹고 한바탕 웃고 떠들다 돌아온 다음날, 숙취 속에 눈을 떠 하루 종일 집에 있다보면 다시금 묘한 우울감에 젖어들게 된다. 썩 좋은 감정은 아니다. 겨우 일주일 정도의 공백 기간인데(그것도 무척 감사한) 나는 그 작은 자유 조차 여유롭게 즐길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정신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새벽 네시에 술에 취해 석촌호수를 역방향으로 비틀비틀 걸으며(사실 그 시간에 석촌호수를 걷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으므로 우리가 걷는 방향이 정방향이었다.) A형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형에게 1년 전 P와 헤어진 이후 그간 내가 겪은 수 많은 괴로움들을 모두 종합하여 내린 최종 결론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냥 모든게 한없이 부질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의지와 노력으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으며 ‘쾌속 순항 중'인데, 왜 그런 하찮은 이유로 계속해서 외롭고, 고통받고, 미련을 가져야 하는지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다.(그렇다고 P가 그립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 P는 내가 살면서 만난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쁜게 아니라 그냥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다. 한 해가 지난 지금도 잘 헤어졌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오늘 눈을 뜨고보니 나보다 더 인간적 외로움에 사무치고 있었을 A형에게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덟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해가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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