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Thought

나는 억수씨의 만화를 참 좋아한다. 그의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본의 아닌, 아니 거의 불가항력에 가까운 20대 초반 남자 대학생의 찌질함과 미성숙함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겪는 일상, 경험, 생각, 고민, 유혹.. 모두 나의 20대 초반의 모습과 유사했고, 많은 작중 배경이 나의 모교임에 내 추억과 융화되어 그 동질감을 더더욱 강렬하게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성숙한 타 캐릭터들의 등장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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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학 생활의 추억과 인맥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B학회의 동기 송년회를 가졌다. 사당동의 허름한 술집에서 열 명 남짓한 친구들이 모였는데 다들 나름 의젓한 사회인이 되어있었다. 오랫만에 각자의 근황을 전하고, 옛날 이야기를 하며 늦도록 술 잔을 기울였다. 거기에는 내가 그 당시에 진심으로 좋아했거나 혹은 진심으로 싫어했던, 그 당시 내 어설픈 인간관계의 대부분이었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나의 대인적 어설픔에 대한 주체이자 객체인 그런 친구들이었다. 결국 나는 모임을 파하고 술에 취해 집에 오는 길에, 그 당시의 추억에 젖어, 또 오랫만에 친구들을 만나 기분이 좋으면서도, 1%의 부끄러운 기억들과 관계들이 상기됨에 마음이 미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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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억수씨의 만화에서 내 삶의 허를 찌른 부분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시게'라는 대사였다. 나의 20대 초반의 수 많은 행복한 기억들 중 그 1%의 부끄러움이 나를 지금까지 괴롭히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섬뜩한 일이니까. 그 때야 미성숙하고 어렸으니까 나름 귀여운 수준(?)의 -그리고 보통 누군가를 좋아했거나 미워하며 파생된- 아주 자연스럽고 이해가능하며 어떻게 생각하면 추억에 가까운, 스스로도 모르고 저지르는 부끄러움이 주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해가 갈 수록 스케일이 다른, 알면서 저지르게 되는 부끄러움의 유혹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고 싶다. 나중에 30대, 40대, 50대.. 나이를 먹고 지금의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그 때에도 이런 부끄러움의 감정을 가지고 살아간다는건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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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려고 안간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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